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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음미일기

20211210 금 '괜찮아 어묵 무조림'

오늘은 부동산 계약을 하는 날이다. 

어제 첫 포스팅을 마치고 sns릴스를 보느라 새벽 4시에 잠들어 피곤함이 과한 것 빼고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눈을 뜨고 습관처럼 핸드폰부터 보려고 하는데 맞은편에 마켓컬리 박스가 보인다. 어제 휴무일을 앞두고 반찬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잔뜩 구매해둔 식재료들이다. 요리사의 삶은.. 아니 나의 삶은 꽤나 단조롭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것을 선호하기도 하고 쉬는 날이나 근무 날이나 음식을 먹거나, 보거나, 또는 만드는 것이 주된 축으로 자리 잡아있다.

 

몇 가지 반찬들을 만들었지만 가장 마음이 쓰였던 반찬은 선물 받은 어묵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옛날을 살아본 적은 없지만 책으로 접했을 때의 그 시대는 '주어진 식품을 어떻게 저장하여 대비를 할까'의 관점이 꽤나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 같다. 요즘 날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딱히 어떤 식재료를 구하지 못할까 염려했던 적은 없다. 일터가 아니라 집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손만 뻗으면 구할 수 있는 풍요로운 식재료의 향연 속, 가득 채운 나의 펜트리는 나의 나태함으로 인한 부패는 있을지언정 어떠한 간절함은 어색한 단어가 되었다. 그냥 먹어도 맛난 고급어묵은 메뉴 개발을 하느라 바빴던 몇 줄을 지나 유통기한이 임박해버렸다. 사실 유통기한은 식품법상의 유통적인 제한을 위한 기간이라 실제 섭취를 하기에는 식품군에 따라 다르지만 며칠간의 여유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를 핑계로 방치할 수는 없기에 어젯밤 나는 이를 활용한 반찬을 만들어야겠다 마음먹었고, 그 결과로 나는 눈앞의 무조림 재료를 집에서 정리하고 있다.

 

어묵을 이용한 무조림을 평소 자주 해 먹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림은 국물요리와 매우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고, 생선 그 자체는 아니지만 이의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어묵을 이용해 무조림을 만드는 것은 아주 맛날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어묵탕보다는 어묵조림..이랄까? 

 

'무'는 우리 문화권에서 아주 친근한 식재료이다. '친근하다'보다는 '뿌리가 깊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꽤나 근대에 들어온 배추나 고추보다 아주 먼 옛날부터 식탁을 지켜온 식재료이니 말이다. 특히 그중 '동치미'는 이 땅 발효음식의 첫 단추라 지칭될 만큼 긴 시간을 우리네 문화와 함께해왔다. 그래서일까? 나는 무를 사용한 음식을 먹을 때 특히나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발효음식을 만들던, 생채를 만들건, 또는 국으로 우려내 끓이건, 또는 갖은양념을 더해 조림으로 먹던 말이다. 근원적인 따스함.. 내게 '무'라는 식재료는 그런 느낌을 강하게 갖고 있다. 

 

무를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 중 조림에 관한 방법을 나누고 싶다. 조림에서의 무는 푹 익어야 제맛이 난다. 무는 겨자처럼 특유의 톡 쏘는 맛을 지니고 있는데(실제로 겨자과는 아니다) 이를 응용하는 조리법과 이를 철저히 없애는 조리법으로 나뉜다. 조림에서는 이를 없애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푹 익히는 방법이 가장 직관적이다. 무를 푹 익혔을 때 무 자체에서 단맛 분자가 늘어난다기보다는 특유의 쏘는 맛이 느껴지지 않아 무 자체의 맛(그중 단맛)을 보다 잘 느끼게 되어 달게 느끼게 된다. 

 

푹 익히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크게 2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쓴맛이다. 일반적으로 여름 무가 쓰고 가을 무가 달다고 알려져 있다. 내 경험상 쓴맛의 차이는 여름이나 가을이나 큰 차이가 없으나 가을무는 복합적인 무기질 맛과 단맛이 보다 잘 느껴져 상대적으로 쓴맛이 가려지는 느낌이었다. 그 이유로 여름작물 특성상 물에 관대하고 성장 속도에 비례해 영양섭취의 양이 비교적 적다 보니 알 하나가 지니는 양분의 총량이 적어 상대적인 '빈 맛'으로 무의 개성 중 하나인 '쓴맛'이 도드라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무를 이용한 조리법은 당분과 친숙하다. 유명한 설렁탕집의 깍두기 조리법에 사이다가 들어가듯 말이다.

 

이런 이유로 무는 그 자체의 품질이 뛰어나다면 가능한 당분을 적게 사용해 재료의 맛을 드러나게 해야 하고, 반대로 쓴맛이 도드라진다면 단맛을 보충하여 자체의 쓴맛을 보다 덜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무조림을 할 때 나는 무를 전처리를 한다. 간혹 무에 바람이 들거나(무에 구멍이 있는 경우 매우 쓰고 무 자체의 맛이 약한 경우가 많다), 무 자체가 너무 쓰고 비린내가 나는 경우(살균력을 지닌 좋은 성분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 가능하다면 차가운 쌀뜨물에 무 덩이를 넣고 끓여 그 거품을 열심히 걷어낸다. 일정 거품을 걷어내면 맑은 거품이 나오게 되는데 그때 거품의 향과 맛을 확인한 후 불의 세기를 줄인 뒤 당을 첨가한다. 이때 당은 백설탕 1가지를 사용하기보다는 올리고당과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 이유로는 둘의 당분 입자가 달라 무 자체에 흡수되는 영역이 다르고, 또 각 온도별 느껴지는 단맛 분자 역시 골고루 섞이어 더 폭넓은 온도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맛을 푹 입혀 일정 시간 익혀낸 무를 사용해 조림을 만들면 매운맛을 가미하건 풀의 향을 가미하건, 또는 담백하게 간장만으로 그 맛을 살려내건 무를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2번째 조건은 삼투압이다. 이는 어떤 재료 건 모든 조리법에서 다 통용이 되지만 특히 그중 조림에서 그 중요도가 빛을 발한다. 대게 재료에 양념의 맛이 푹 배는 것이 조리시간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조리시간과 삼투압 양의 관계는 꼭 비례하지만은 않는다. 매우 복합적인 이론이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아주 간단한 키워드 하나를 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시간'이다. 물리적인 이유로 우리가 목욕탕에서 100도에 임박하는 물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욕탕에 오래 들어가 있으면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손가락의 삼투압 현상이 있다. 이처럼 삼투압은 외부 환경과 세포 간의 통로 크기의 영향뿐만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 동안 보다 많은 양, 보다 정확한 양이 오가는 특수성이 있다. 조림은 이를 이용해야 한다. 재료의 구조감을 가능한 부드럽게 만들기 위함이나 수분을 가능한 제거함이 목적이 아니라면 긴 시간을 고열에서 조리할 필요가 없다. 일정량의 염도, 즉 맛은 시간에 의해 충분히 육수와 재료 사이를 오간다. 그 과정이 재료에 양념 맛을 배어들게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수분량이 많은 물 같은 채소는 보다 삼투압의 영향을 더 받는다. 젓가락으로 찍었을 때 푹 들어가는 촉감에 한껏 기대를 가지고 한 입 크게 배어문 조림 속 무에 실망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무가 날것의 무 맛이 날 때가 바로 이런 '시간의 여유'를 주지 않은 경우이다. 이는 대부분의 조림이 조리 직후보다 몇 시간 후, 또는 하루 뒤에 먹었을 때 더 맛있는 이유를 설명하기 좋다. 

 

단순히 조리법만 관해서도 할 말이 이렇게나 많아진다. 주변에 흔한 무지만 그 재료의 특성을 이해하고(정답은 없다) 이를 가능한 다스리려 시도하는 것이 '요리'의 어원적 의미, 즉 본질 자체이다. 이처럼 무 하나를 맛있게 조리하려 하면 사실 이에 곁들이는 재료가 생선이건 어묵이건 꽤 맛있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유다. 물론 보다 깊은 과정에서는 그 무를 어묵과 조화롭게 하기 위한 경우의 수에 애를 먹기도 하지만 말이다. 주어진다는 것은 참 생각하기 나름이다. 딱히 큰 노력을 하지 않고 얻은 것이기 때문일까? 그런 점 때문에 더더욱 무언가를 특별하게 여기려는 마음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당연히 특별하게 여겨야 할 것뿐만 아니라 당연하지 않아도 특별하게 여기려는 그 마음 말이다. 꽤 괜찮은 반찬을 만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